
신장 건강 (식습관, 만성신부전, 장기이식)
솔직히 저는 신장병이 이렇게 무서운 병인지 몰랐습니다.
며칠 전, 15년을 신장 하나로 버텨온 친구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겨우 50살이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나서야 우리가 매일 먹는 것들이 얼마나 조용히, 그리고 얼마나 깊숙이 몸을 망가뜨리는지 비로소 실감했습니다.
식습관이 신장을 망친다는 걸, 우리는 정말 알고 있을까요?
친구가 처음 신장 이상을 진단받은 건 35살 무렵이었습니다.
당시엔 그냥 몸이 좀 안 좋은 거려니 했는데, 이게 결국 15년 넘는 투병의 시작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신장은 망가지기 시작하면 되돌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장의 핵심 기능은 혈액 속 노폐물을 걸러내는 것입니다.
이 과정의 핵심 구조가 바로 사구체(glomerulus)입니다.
사구체란 신장 안에 있는 아주 작은 모세혈관 덩어리로, 쉽게 말해 혈액을 정수하는 초정밀 필터라고 보시면 됩니다.
문제는 이 필터가 한 번 손상되면 재생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사구체를 망가뜨리는 주범은 무엇일까요?
바로 과도한 나트륨 섭취입니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성인의 하루 나트륨 권장 섭취량은 2,000mg 이하(출처: 세계보건기구-WHO)인데, 한국인의 평균 섭취량은 이 기준의 약 세 배에 달합니다.
저도 이 수치를 처음 봤을 때 설마 싶었는데, 주변 식탁을 돌아보니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제 주변에 만나면 무조건 치킨집부터 찾는 친구가 있습니다.
낮이건 밤이건 치킨을 먹어야 직성이 풀린다고 합니다.
생선은 비린내 난다며 일체 입에 안 대고, 오로지 돈가스와 치킨만 먹습니다.
나이가 50인데 말입니다.
회사 젊은 직원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편의점에서 컵라면이나 삼각김밥으로 점심을 때우고, 회식은 고깃집 아니면 치킨집입니다. 이러니 사구체가 버텨낼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쌓이는 염분
문제는 짠맛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국물 요리는 뜨거우면 짠맛이 덜 느껴지고, 라면·떡볶이·어묵·김밥 같은 분식류는 먹을 때 이렇게까지 짠지 체감하기 어렵습니다.
제 경험상 곰탕이나 설렁탕을 먹을 때 국물을 다 마시고 나면 어김없이 얼굴이 붓는데, 이게 신장이 과부하 신호를 보내는 것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제 친구도 30대 직장인 시절에 너무 일이 많아서 끼니를 거른 적도 많았습니다.
그야말로 새벽에 별을 보고 출근하고 한밤중에 달을 보며 퇴근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밤늦게 집에 가면 배가 고프더랍니다.
그래서 아내랑 둘이 이것저것 먹기 시작했는데, 이게 습관이 돼서 거의 매일 밤늦게 야식을 했답니다.
거기에 술을 곁들이다 보니, 자정을 넘겨서 술 취해 잠들고, 새벽에 또 일어나 출근하고, 사무실에 도착해서 화장실에 가고 하는 식으로 생활이 엉망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결과는 말씀드린 대로 신장 이상이었습니다.
염분이 혈압을 올리고, 높아진 혈압이 다시 사구체를 압박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짠 음식을 먹은 뒤 부종이 며칠씩 지속된다면, 이건 단순한 피로가 아닐 수 있습니다.
신장이 보내는 경고 신호일 수 있습니다.
- 라면·국물 요리: 한 끼에 나트륨 1,500~2,000mg 이상 섭취 가능
- 곰탕·설렁탕 국물 전량 섭취 시 하루 권장량 초과
- 치킨·삼겹살: 소스·양념에 염분이 집중, 체감보다 많은 나트륨 포함
- 편의점 도시락·김밥: 작은 용량 대비 나트륨 함량 높음
만성신부전과 장기이식, 기다림이 곧 생사를 가릅니다
친구가 처음 신장 이식을 받기까지 몇 년이 걸렸습니다.
수년을 기다려 겨우 이식을 받았고, 10여 년이 지나자 이식받은 신장이 수명을 다했습니다.
다시 이식 대기자 명단에 올랐는데, 이번엔 끝내 차례가 오지 않았습니다.
만성신부전(CKD, Chronic Kidney Disease)이란 신장 기능이 3개월 이상 지속적으로 저하된 상태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신장의 여과 능력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떨어진 상태입니다.
무서운 건 신장 기능이 15~20% 이하로 떨어지기 전까지는 뚜렷한 증상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증상이 느껴질 때는 이미 상당히 진행된 상태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친구는 마지막 반년을 투석이 가능한 재활병원에서 보냈습니다.
혈액투석(hemodialysis)이란 기계를 통해 혈액 속 노폐물을 인위적으로 걸러내는 치료법으로, 신장이 제 기능을 못 할 때 생명을 유지하는 마지막 수단 중 하나입니다.
친구는 주 3회 이상 투석을 받아야 했습니다.
거기에 면역억제제(immunosuppressant) 부작용까지 겹쳤습니다.
면역억제제란 이식받은 장기를 몸이 이물질로 인식해 공격하지 못하도록 면역 기능을 의도적으로 낮추는 약물입니다.
덕분에 이식 신장은 버텼지만, 몸 전체가 무방비 상태가 됐습니다.
조그만 상처도 피가 잘 멎지 않고, 살짝 부딪혀도 시퍼렇게 멍이 들었습니다.
넘어져서 발목이 부러졌는데 1년이 지나도 뼈가 붙지 않았습니다.
죽는 날까지 깁스를 풀지 못했습니다.
국제신장질환개선기구(출처: KDIGO)의 가이드라인에서도 만성신부전 환자는 골대사 이상으로 골절 위험이 일반인 대비 수배 높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당뇨 합병증도 생겨서 매일 혈당을 관리해야 했고, 소변 배출을 위한 소변통 없이는 하루도 생활하기 어려웠습니다.
신장 건강, 언제 검사해야 할까요?
신장 이상은 혈액검사와 소변검사로 비교적 일찍 잡아낼 수 있습니다.
혈중 크레아티닌(creatinine) 수치가 중요한데, 크레아티닌이란 근육 대사 과정에서 생성되는 노폐물로, 신장이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면 혈액에 쌓입니다.
이 수치가 정상 범위를 벗어나면 신장 기능 이상을 강하게 의심해야 합니다.
소변에서 단백뇨나 혈뇨가 검출되는 것도 대표적인 이상 신호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검사들은 일반 건강검진에 포함되어 있는데도 수치 해석을 대충 넘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과지 받으면 그냥 '이상 없음'만 확인하고 끝내지 않으셨나요?
저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크레아티닌 수치와 단백뇨 항목은 반드시 따로 짚어봐야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신장 기능이 5% 미만이면 바로 생명에 위험한가요?
A. 반드시 즉각적인 위험을 뜻하지는 않지만, 혈액투석이나 복막투석 없이는 노폐물이 혈액에 쌓여 요독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투석을 받으면서 어느 정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지만, 면역억제제 부작용이나 합병증이 겹치면 상황이 급격히 악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볼 수 없습니다.
Q. 신장이 나빠지면 어떤 증상이 먼저 나타나나요?
A. 신장 기능이 50% 이상 손실되기 전까지는 증상이 거의 없습니다.
이후에는 야간 빈뇨(밤에 소변이 자주 마려운 증상), 소변 거품, 눈 주위나 발목 부종, 피부 가려움증, 쉽게 내려가지 않는 혈압 등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 중 하나라도 반복된다면 바로 신장 기능 검사를 받아보시기를 권합니다.
Q. 저염식 식단, 현실적으로 어떻게 시작하면 될까요?
A. 처음부터 완벽한 저염식을 목표로 하면 오래 못 갑니다.
우선 국물 요리에서 건더기만 건져 먹는 습관부터 시작해보시기를 권합니다.
곰탕이나 라면 국물을 절반만 마시는 것만으로도 나트륨 섭취를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조미료보다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방향으로 조금씩 바꿔가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Q. 장기이식 대기 기간이 왜 그렇게 긴가요?
A. 국내 장기기증 희망자 수는 대기 환자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뇌사 기증자 한 명이 최대 9명에게 장기를 줄 수 있지만, 실제 기증으로 이어지는 비율이 낮습니다.
친구도 몇 년을 기다렸고, 두 번째 이식은 끝내 기회가 오지 않았습니다.
장기기증 희망 등록에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결론
친구를 보내고 나서 한동안 멍했습니다.
원망도 들었습니다.
왜 좀 더 일찍 식단을 바꾸지 않았을까, 왜 더 일찍 검사를 받지 않았을까. 하지만 솔직히 저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치킨, 삼겹살, 국물 가득한 찌개, 라면. 만나면 즐겁고, 맛있는 걸 먹고 싶고, 그게 당연한 일상이었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식습관이 중요하다는 말은 너무 많이 들어서 오히려 실감이 안 됩니다.
그런데 친구의 마지막을 직접 보고 나니, 이게 그냥 '좋은 말'이 아니라는 걸 몸으로 알게 됐습니다.
신장은 한 번 망가지면 돌아오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 건강검진 결과지를 꺼내서 크레아티닌 수치와 단백뇨 항목을 확인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그리고 오늘 저녁 국물 요리를 드신다면, 국물은 조금 남겨보시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