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매 초기 어머니가 “안 더워”라고 말할 때, 그 말을 그대로 믿어도 될까요?
이번 여름은 정말 유난히 덥습니다.
폭염에 폭우까지 이어지면서 예전의 여름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낮에는 물론이고 밤에도 기온이 내려가지 않아 잠을 설치는 날이 많습니다.
그런데 요즘 저는 어머니 때문에 더 걱정이 많아졌습니다.
어머니는 아침이면 데이케어센터에 가셨다가 저녁에 돌아오십니다.
집에 오시면 저녁 약을 챙겨 드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제가 꼭 묻는 말이 있습니다.
“엄마, 더워?”
그러면 어머니는 거의 매번 똑같이 대답하십니다.
“아니, 안 더워.”
“선풍기 틀어줄까?”
“아니, 틀지 마.”
문제는 그때의 바깥 기온이 36도 안팎이라는 것입니다.
하루 종일 햇볕을 받은 방 안은 바깥보다 더 뜨거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덥지 않다고 하십니다.
물을 마시라고 가져다 드려도 마찬가지입니다.
“밤에 목마르면 마셔요. 더우니까 물 자주 드셔야 해요.”
그러면 돌아오는 대답은 이것입니다.
“물 마시면 화장실 가야 하니까 안 마셔.”
어머니는 보행기를 사용하고 계시기 때문에 화장실을 자주 가는 것이 불편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물을 일부러 적게 드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관련 뉴스를 보다가 문득 걱정이 되었습니다.
치매 환자도 더위 자체는 느낄 수 있지만, 더위를 느낀 뒤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실제로 전문가도 치매 환자에게 중요한 것은 더위를 느끼느냐가 아니라, 더위를 느낀 뒤 물을 마시거나 에어컨을 켜는 등 적절한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느냐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어머니의 “안 더워”라는 말도 단순히 더위를 못 느끼는 것이 아니라, 더위를 느끼더라도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저처럼 치매 초기 부모님을 모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이 문제를 자세히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치매 환자는 정말 더위를 못 느끼는 것일까요?
먼저 가장 중요한 부분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치매 환자라고 해서 더위와 추위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 보도에서도 분당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전문가는 치매 환자도 덥고 추운 것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다음 행동입니다.
몸이 덥다고 느꼈다고 해서 반드시 창문을 열거나 선풍기를 켜거나 물을 마시는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다음과 같이 행동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덥다.”
→ 선풍기를 켠다.
→ 에어컨을 켠다.
→ 옷을 가볍게 입는다.(반팔, 반바지 등)
→ 물을 마신다.
→ 시원한 곳으로 이동한다.
그런데 인지기능이 저하된 사람에게는 이 연결고리가 약해질 수 있습니다.
“덥다”라는 감각은 있는데,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지?”
라는 판단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는 물을 마셔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더라도 잠시 후 잊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보호자가 보기에는 “저렇게 더운데 왜 안 덥다고 하지?”라는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우리 어머니의 “안 더워”라는 말도 의심해야 할까요?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어머니의 말을 거짓말이라고 단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실 어머니 입장에서는 정말로 “안 덥다”라고 느끼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또는 어느 정도 덥다는 느낌은 있지만, 그 정도 불편함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선풍기를 틀면 춥다”, “물을 마시면 화장실에 가야 한다”는 다른 불편함이 더 크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특히 치매 초기에는 기억력이나 판단력의 변화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납니다.
따라서 보호자가 해야 할 일은 어머니의 말을 무조건 믿거나 반대로 무조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과 실제 생활환경을 함께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다음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 실내 온도가 지나치게 높지는 않은가?
- 옷을 너무 두껍게 입고 있지는 않은가?
- 물을 거의 마시지 않는 것은 아닌가?
- 소변량이 지나치게 줄지는 않았는가?
- 평소보다 기운이 없는가?
- 어지러워하는가?
- 평소보다 졸려하는가?
- 말수가 갑자기 줄었는가?
- 행동이 평소와 달라졌는가?
- 갑자기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 있는가?
특히 평소와 다른 갑작스러운 혼란이나 반응 저하가 나타난다면 단순히 치매 증상이 심해진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탈수나 온열질환이 원인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치매 초기 어머니에게 가장 걱정되는 것은 ‘탈수’입니다
제가 어머니에게 물을 드시라고 계속 말씀드리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물을 마시면 화장실에 가야 해서 일부러 물을 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령자는 탈수에 취약하고, 치매가 있는 경우에는 스스로 갈증을 느끼거나 물을 마셔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적절하게 행동하는 데 어려움이 생길 수 있습니다.
폭염 상황에서는 이런 문제가 더욱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특히 탈수가 심해지면 단순히 목이 마른 정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어지러움, 피로감, 두통 등이 나타날 수 있고 심한 경우 의식 변화나 온열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더욱 주의해야 하는 이유는 탈수 자체가 인지기능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폭염 상황에서 치매 환자가 입원하거나 응급실을 찾을 위험이 증가한다는 연구들이 보고되고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물을 안 먹으려고 하는데 본인이 싫다니까 그냥 놔둬야겠다”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어머니가 부담 없이 수분을 섭취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주는 것이 좋습니다.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라고 강요하기보다는 이렇게 해보세요
어머니처럼 화장실에 가는 것이 불편해서 물을 피하는 분에게는 무조건 “물을 많이 드세요”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현실적인 방법이 필요합니다.
◆ 한꺼번에 많이 마시게 하지 않기
큰 컵에 물을 가득 따라놓고 “이거 다 드세요”라고 하면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대신 작은 컵에 조금씩 담아 자주 드시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 물을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두기
냉장고 안에 넣어두면 어머니가 물을 마셔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침대 옆이나 자주 앉는 의자 근처처럼 눈에 잘 띄는 곳에 두는 것도 방법입니다.
◆ 물만 고집하지 않기
개인의 건강상태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수분 섭취는 물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국이나 수분이 많은 음식 등을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심장질환이나 신장질환 등으로 수분 섭취량을 제한받고 있다면 임의로 물을 많이 늘려서는 안 됩니다.
이런 경우에는 담당 의사의 지시를 따라야 합니다.
◆ 화장실 문제도 함께 해결하기
어머니가 물을 안 마시는 가장 큰 이유가 “화장실에 가야 하기 때문”이라면 이 부분을 해결하지 않고 물만 권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밤에 화장실에 가는 것이 불편하다면 취침 직전에 많은 양을 마시게 하기보다는 낮 시간 동안 조금씩 수분을 섭취하도록 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선풍기 틀지 마”라고 하시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부분도 제가 상당히 고민했던 부분입니다.
어머니가 “선풍기 틀지 마”라고 하시면 보호자 입장에서는 난감합니다.
그렇다고 강제로 틀어버리면 어머니가 불쾌해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질문을 바꾸는 방법도 있습니다.
“엄마, 선풍기 틀까요?”
보다는
“엄마, 제가 조금 더워서 선풍기 약하게 틀게요.”
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람을 직접 몸에 강하게 맞히기보다는 실내 공기를 순환시키는 정도로 약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에어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에어컨 켤까요?”라고 계속 물어보는 것보다 실내 온도를 확인하고, 필요하다면 적절한 냉방을 유지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치매 환자의 폭염 관리에서 보호자가 실내 환경을 확인하고 옷차림과 수분 섭취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는 전문가 조언도 있습니다.
치매 환자의 폭염 관리는 ‘말’보다 ‘관찰’이 중요합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제가 가장 크게 느낀 점입니다.
어머니에게
“덥죠?”
라고 묻고
“안 더워.”
라는 대답을 듣는 것만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대신 이렇게 확인해야 합니다.
① 방 온도
실내가 지나치게 덥지 않은지 확인합니다.
② 옷차림
날씨에 맞지 않게 두꺼운 옷을 입고 있지는 않은지 봅니다.
③ 수분 섭취
물을 얼마나 마셨는지 확인합니다.
④ 소변
평소와 비교해서 소변량이나 횟수에 변화가 있는지 살펴봅니다.
⑤ 행동 변화
평소보다 축 처져 있거나 졸려하는지 봅니다.
⑥ 인지 상태
갑자기 평소보다 혼란스러워하거나 말이 어눌해지는 등 변화가 있는지 확인합니다.
특히 마지막 부분이 중요합니다.
치매 환자는 원래도 기억력이나 판단력에 변화가 있기 때문에 온열질환으로 인한 이상 증상이 치매 증상과 섞여 보일 수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혼란이나 반응 저하를 단순한 치매 증상으로 넘기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이런 증상이 나타난다면 병원을 생각해야 합니다
폭염 속에서 어머니에게 다음과 같은 변화가 나타난다면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합니다.
- 평소보다 심하게 기운이 없다.
- 어지러워한다.
- 지나치게 졸려한다.
- 반응이 둔하다.
- 갑자기 혼란스러워한다.
- 평소와 행동이 크게 달라졌다.
- 물을 거의 마시지 못한다.
- 탈수가 의심된다.
- 의식이 흐려지거나 깨우기 어렵다.
특히 의식 변화, 심한 혼란, 실신, 경련 등 심각한 증상이 나타난다면 응급상황일 수 있으므로 즉시 119 등 응급의료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원래 치매가 있으니까 그런가 보다”라고 넘기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폭염에는 외출도 조금 더 신중해야 합니다
치매 환자에게 폭염이 위험한 이유는 단순히 더위 때문만은 아닙니다.
기억력과 판단력, 시간과 장소를 인식하는 능력이 떨어져 더위를 피하거나 휴식을 취해야 하는 상황을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 폭염 기간 치매 환자의 실종 신고가 증가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따라서 폭염이 심한 날에는 가능한 한 한낮 외출을 피하고, 외출이 필요하다면 보호자가 동행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또한 만약 배회 가능성이 있는 분이라면 위치추적 장치나 실종 예방을 위한 사전등록제 등을 미리 알아두는 것도 좋습니다.
경찰 역시 치매 환자의 실종에 대비해 배회감지기나 위치추적 기기, 사전 정보 등록 등을 활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치매 예방약을 먹고 있으면 폭염 걱정은 안 해도 될까요?
저희 어머니도 치매 관련 약을 복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도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치매 치료 또는 예방을 위한 약을 복용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폭염 위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약은 약대로 담당 의사의 지시에 따라 복용하고, 폭염에 대한 생활관리는 별도로 해야 합니다.
특히 어머니가 물을 적게 마시거나 냉방을 거부하는 문제가 반복된다면 다음 진료 때 반드시 의사에게 이야기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물을 잘 안 마십니다.”
“더운 날에도 덥지 않다고 합니다.”
“화장실 가는 것이 불편해서 물을 일부러 피합니다.”
이런 생활정보는 진료에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
이번 일을 겪으면서 저는 부모님을 보호한다는 것이 꼭 거창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히려 매일 반복되는 아주 작은 확인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아침에 한 번,
“오늘 물은 드셨어요?”
저녁에 한 번,
“오늘은 많이 더웠죠?”
그리고 방 온도를 확인하고, 물을 눈에 잘 띄는 곳에 놓아드리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안 더워”라고 하더라도,
“그래? 그럼 다행이네.”
라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실내 온도와 옷차림, 수분 섭취 상태를 함께 확인하는 것입니다.
치매 환자에게 중요한 것은 더위를 느끼느냐의 여부보다 더위를 느낀 뒤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느냐이기 때문입니다.
마무리
이번에 “더워?”라는 아주 간단한 질문에서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어머니가 “안 더워”라고 하면 정말 안 더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꼭 그렇지는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치매가 있다고 해서 더위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위를 느끼면서도 물을 마시거나 에어컨을 켜거나 시원한 곳으로 이동하는 등의 적절한 행동으로 연결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치매 초기 부모님을 모시는 가족이라면 여름철에는 특히 말보다 행동과 환경을 살펴보는 습관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덥지 않으세요?”
라고 물어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방 온도는 괜찮은지, 물은 충분히 마셨는지, 옷은 적당한지, 평소와 행동이 달라지지는 않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저 역시 이제부터는 어머니가 “안 더워”라고 하셔도 그냥 웃고 넘어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억지로 에어컨을 켜고 물을 강제로 먹이는 방식도 정답은 아닐 것입니다.
어머니가 왜 냉방을 싫어하는지, 왜 물을 마시지 않는지를 먼저 이해하고 불편함을 줄이면서 안전을 확보하는 방법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무엇보다 폭염 속에서 평소와 다른 심한 졸림, 어지럼, 반응 저하, 갑작스러운 혼란이나 의식 변화가 나타난다면 단순히 치매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탈수나 온열질환 가능성을 고려해 신속하게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치매 초기 부모님을 모시는 가족이라면 올여름에는 한 가지를 꼭 기억했으면 합니다.
“안 덥다”는 말보다 부모님의 실제 상태를 살펴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안전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살피고 반복해서 챙겨드리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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